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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평론-2nd Solo Ex) Nanography - 독립큐레이터 최연하 2331

새로운 유령의 출몰_지호준의 나노그래피(Nanography)

 

글 : 최연하(사진학)

 


최근의 사진은 어느 때보다 자기 반영적인 메타 사진들을 통해 자체 내에서 다양한 검증을 시도하고 있다.

현실과 허구를 결합하는 상호 텍스트성으로서의 사진이미지가 어디로 향해갈지 예측불가능 한,

드디어 사진이미지의 디아스포라 시대라 할 만하다. 놀라운 속도로 변모하고 있는 사진은

예술, 과학, 산업이 혼융되며 새로운 기능과 역할을 제시하고 있다.

 이는 사진 발명 이래 지속적으로 진보된 형식의 개발 때문만은 아니다. 새로운 기술적 수단의 출현이

단지 예술의 형식만을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예술의 개념 자체를 변화시키는 것이라는

‘폴 발레리’의 지적과 같은 맥락이다.

그것은 다양한 문화현상을 만들어 냄과 동시에 그 자체로 해방적인 지평은 물론

새로운 시각적 패러다임을 제시하며 문화변동까지 이끌어낸다.

그런 의미에서 지호준이 만들어낸 &<나노그래피(nanography&>가 향후 어떠한 파장을 그려낼지

눈여겨볼 일이다.

 


기표와 기의의 피해 갈 수 없는 결합인 사진이미지의 깊이가 시간이 흐를수록 그 매혹이 더해갈 수

있었던 데는 많은 사진가들의 놀라운 상징, 그 환기의 마술 때문이었다. 여기 폐쇄적인 지시와

의미의 망에 갇히길 거부하는 지호준의 새로운 사진이 있다.

보이지 않는 것들을 다시 우리의 세계 안으로 성큼성큼 들여놓는 이 사진들은

역동적 상징과 암시의 공간으로 가득하다. 사진이 다른 종류의 모방, 기호와 구분되는 지점이

언제나 지시 대상을 지니는 점일 터인데, 지호준의 사진에서는 비현실적인 공상과 허구만 보인다.

이곳이 숲 속의 빈터 인지 벽에 드리운 긴 밤의 그림자인지 알 수 없다. 이 사진의 존재론적 욕망은

유령성의 주위를 맴돌고 있는 것만 같다. 하지만 이것은 분명 현전하는 건물과 이제껏 볼 수 없었던

이미지의 결합으로 탄생된 것이다. 바로 머리카락 굵기의 10만분의 1에 해당된다는

나노(nano)이미지가 투영된 것이다.

사진을 전공한 주술사가 휘두른 마법의 지팡이로 만들어낸 새로운 유령이 출몰했다.

그렇다면 이제껏 인간의 눈에 의해 감지할 수 있는 가시광선에서 반사된 사물의 모습(3차원)을

2차원으로 평면으로 옮기는 것이 사진이라는 진술은 재고되어야 하는가?

아니면 나노는 실재하는 사물인가?

그 컬러와 크기가 변주되었을 뿐 지호준이 찍은 것은 분명 나노의 본질이다.

존재가 본연의 상태로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본질이고 그 본질을 비추는 것은 빛이다.

사진은 그 태생이 빛이었고, 모든 사물의 가시성은 빛으로부터 온다. ‘거기에 분명히 있었던’

나노의 본질(탄소, 산소, 산소, 규소)을 담아낸 이것은, 그렇다면 분명 사진이다.

동시에 모든 곳에 있으면서 없는 유령이기도 하다. 이것이 마술사 지호준이 꽃피운 푼크툼이다.

지호준의 사진은 우리의 시각과 사유의 확장을 촉발하는 동시에 쾌감을 선사한다.

기계복제 예술에 민감한 반응을 보인 벤야민이 주목한 사진의 ‘마술적 가치’이기도 하다.

우리 눈에 보이지 않지만 분명 존재하는 것들이 이중, 삼중으로 중첩되며 ‘시각적 무의식’과

‘우연성’으로 포착되고, 우리가 전부로 생각했던 3차원적 시공간 속에

‘비가시적 지점’을 담아내고 있는 것이다.


사진의 한계를 넘어 선다는 것, 그것은 기존의 사진이 가지고 있는 개념을 넘어 선다는 것이다.

사진의 새로움은 탈사진적인 상상운동에 다름 아니다. 이를 위해서는 독창적으로 새로운 이미지를

현시하여 보편적으로 전달하는 능력이 필요하다.

객관적 대상을 자유롭게 인식해내는 이 젊은 감각은 새로운 매체를 수용하는 능력과 감수성이 남다르다.

단순한 테크놀러지의 시각적 임팩트, 매혹을 주는 차원에 머물지 않고 과학적, 서사적인 것과 함께 얽혀

사진의 또 다른 화두를 갖게 한다.

지호준의 사진은 위력적인 현시보다 훨씬 유연하게 다른 것과 혼합하면서

또 다른 세계를 펼쳐 보이는, 매우 풍부한 방식으로 이 세계와 교섭하고 대응하고 있는 것이다.